태권도선교Home >  태권도선교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6)
지난 칼럼에서는 태권도선교연합회의 필요성과 유용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태권도 선교는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제 그 성장이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인 선교로 발전하고, 총체적인 태권도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선교사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연합회의 결정 아래 마련된 기준과 표준을 바탕으로 공통된 가치와 내용을 가지고 사역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효과적인 태권도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협력 선교와 연합회를 통한 전략 개발을 통해 질적인 성장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일반적으로 각 선교회는 고유한 비전과 특성에 따라 선교사 자격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선교사는 일정 기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격을 갖추도록 한 후 파송합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본격적인 선교 열풍이 일기 시작하면서, 파송 교단이나 선교회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자격이 없거나 준비가 부족한 선교사들이 다수 파송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선교지와 선교사들 사이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으며, 이는 결국 오늘날 선교지를 오염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저명한 선교학자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내가 선교사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선교사들을 돌려보내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태권도 지도자로서의 자격과,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태권도를 잘하는 신앙 좋은 성도, 군대 초단이지만 선교에 열정을 가진 성도, 혹은 국가대표급 실력을 갖추었지만 복음 전파의 능력이 부족한 성도 등, 태권도와 선교 사이의 균형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선교사로 파송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태권도 선교는 여전히 일반 선교를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태권도선교연합회를 구성하여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인 태권도 선교와 선교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적절한 선교훈련과 신학교육을 수료한 사람들 중에서 검증된 자들을 선별하여 파송함으로써, 한국교회 선교의 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기준을 정하는 중요한 이유는 자격이 없는 선교사를 선별해 배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목적은, 설정된 기준에 따라 태권도 선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여, 자신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선교신학적으로 필요한 영역은, 적합한 역량을 갖춘 태권도 선교회나 선교사 훈련기관들과 협력하여, 태권도 기술체계와 선교신학이 균형을 이루는 총체적 태권도 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선교사로 세워야 합니다. 또한, 신학대학교의 선교학과와 협력하여 해당 과목들에 대한 위탁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5): 태권도 선교회 연합에 대한 책임
태권도 선교회들은 각기 다른 장점들이 있습니다. 신앙훈련, 신학훈련, 태권도 기술훈련, 태권도선교 현지화, 엘리트 태권도인 양성, 주일학교 운영을 위한 태권도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태권도선교가 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연합선교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점입니다. 만일 모든 태권도 선교회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연합회가 조직되어 있다면, 각 선교회의 장점을 체계화하여 태권도선교를 통해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고 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공유함으로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태권도선교를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태권도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선교신학적으로 재해석된 선임 태권도 선교사들의 현장 경험과 태권도 정신체계, 그리고 상황에 적절한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선교신학적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역량 있는 선교사로서 사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권도연합선교회는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확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태권도선교와 선교사에 관련된 기준과 표준은 어느 한 선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회를 통해 결정될 때 비로소 그 권위가 인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회들이 함께 연구하고 결정하여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으로 정립된 내용들을 선교신학자들의 검증을 통해 확증하고 그것을 모든 태권도 선교사가 공통적으로 이해할 때, 태권도 선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혼란을 경험하지 않게 될 것이며, 공통된 가치를 추구함으로 태권도 선교회들 간 협력과 연합사역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권도 선교회들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선교회들 간의 갈등이나 문제로 인함이 아니라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만을 선교로 인정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신복음주의 영향으로 인하여 태권도선교가 이차적 선교 수단으로 사용된 것과 태권도 수련내용에 관한 선교신학적 해석이 없는 일과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복음적인 총체적 선교론을 추구하고 있고, 태권도 정신체계도 제창되어 성경적 해석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관하여 태권도선교 연합회가 주도하고 태권도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한다면 복음적인 총체적태권도선교가 활발하게 수행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권도선교는 이차적 선교수단으로 활용됨으로 선교신학적 평가나 선교 사역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었습니다. 하루속히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구성되고 태권도선교에 관련된 요소들이 선교신학적 체계를 갖추게 될 때, 태권도선교는 일반 복음선교와 동등하게 선교신학적 평가를 받을 내용들을 갖춘 일차적 선교 수단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4)
제가 9단 승단심사를 볼 때, 함께 심사에 지원한 분들 대부분은 60대였고, 그 중 절반 이상은 관절염이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범님은 전라북도에서 한의사를 대동한 채 심사를 준비하며, 틈틈이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기본 발차기조차 힘겨운 상황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날고 뛰며 활기차게 수련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여 품새에서 뛰어 옆차기를 할 때, 디딤발이 바닥에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옆차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히 해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태권도를 기술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는 시기는 매우 짧습니다. 지금은 540도 발차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곧 360도 발차기도 힘들어지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단순한 뒤차기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태권도인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성숙한 태권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태권도의 기술체계는 곧 정신체계를 추구하기 위한 통로와 같습니다. 힘든 수련 과정을 통해 자신의 현재 실력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기술이 향상되는 만큼 태권도인으로서의 인격도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쪽짜리조차 되지 않는 태권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젊을 때는 실력으로 수련자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인격과 성품, 그리고 영성으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나이가 든 태권도 선교사가 더 이상 젊은 사범들처럼 수련을 지도하지 못할 때, 가까운 곳에 온 젊은 사범에게 수련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태권도 선교가 아닌 단지 기술만 가르쳐 왔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선교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하며, 그러한 현상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정확한 평가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통해 ‘가치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태권도 선교사 자신도 실력으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천하는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올바르게 총체적 태권도 선교를 수행하는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발견한 사실은, 태권도가 세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태권도에 정신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태권도의 정체성은 지금처럼 기술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체계에 있다는 사실을 국기원이 하루속히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 기독 태권도인들이 성경적으로 해석된 태권도 정신의 가치를 통해 그 우수성을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2025년 4월 3일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장 7절 아버지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나의 소망이 여호와께 있는 줄 아나이다. 오늘도 오직 주님만이 나의 반석이시고,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산성이시기에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으니.. 세상의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소망이신 내 주님만 바라며 살아가는 복 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여러분의 하루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위 기도문은 나의 고백으로 계속 기도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기도의 끝에 여운을 남겨둡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아침 기도문'을 시작하여 '삶의 기도문'으로 완성되기를 축복합니다. -살아가는 교회 황영찬 목사-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3)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미국 NBC 방송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America’s Got Talent에서 결승까지 진출한 적이 있습니다. 공중을 날고, 회전하며 차고, 격파하는 역동적인 퍼포먼스에 관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시범이 끝나자 관객 전원이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태권도의 강한 힘과 파괴력이 아름다운 예술적 동작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보며 태권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권도의 정체성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화려한 시범에 있지 않고, 여전히 그 정신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만약 기술 체계가 태권도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면, 더 멋지고 대중적인 스포츠형 무도가 등장할 경우, 세계는 태권도에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계인이 태권도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태권도가 정신체계를 기반으로 그 위에 기술체계가 세워진, 가치의 천장이 높은 독특하고 균형 잡힌 수준 높은 스포츠형 무도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은 태권도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총체적 태권도선교의 핵심은, 태권도의 정신체계를 수련 과정을 통해 기독교의 가치로 실천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단순히 기술체계 중심의 사역을 넘어서, 정신체계와 통합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기원은 설립 50년 만에 태권도의 정신체계를 정립하여 발표했지만, 그에 따른 책임 있는 교육과 실천은 아직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태권도 정신체계를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기독교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일은 총체적 태권도선교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며, 동시에 태권도의 역사성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국기원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대한민국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많은 국내 태권도 지도자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태권도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바라기는 모든 기독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기독교의 가치로 해석하고 (태권도 정신의 기독교적 해석에 대한 내용은 5월부터 칼럼을 통해 연재할 예정입니다) 그 가치를 실제 삶에서 실천함으로써 태권도를 통해 복음이 전파될 뿐 아니라, 일반 태권도 문화가 기독교적 문화로 정착되는 비전을 함께 나누고 실현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떠나, 모든 태권도 도장 안에서 수련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겸손히 섬기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도록 훈련하며, 예수님을 알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배워갈 수 있는 새로운 태권도장 문화를 세우는 일에 기독 태권도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2)
태권도 선교사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수련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은 수련 과정을 통해 복음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기독교 진리와 신앙에 관심을 갖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증인 된 삶을 사는 것이며, 복음에 대한 해석적 삶이라고 이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실존적인 내 삶이 신학의 중심이 되는 것은 총체적 선교론과 상황화 신학에서도 핵심 개념입니다. 사실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것은 단지 효과적인 선교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셨던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님의 기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까지도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기독교 교리에 매력을 느껴서 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이웃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료들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에게 복음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수련자들은 지도자의 삶과 행동을 보고 교회에 갈지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도자가 행복해 보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때, 수련자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된 수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확장하는 이유는 단순한 개인의 만족이나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힘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태권도 정신이 말하는 바람직한 태권도인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 규정됩니다. 태권도 선교사의 삶은 수련자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수련자들이 자신을 닮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교사 개인을 닮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태권도 지도자의 전통적인 권위적 태도를 내려놓고, 자신 역시 더 높은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임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수련자들도 그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거나,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는 데서 만족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환경오염, 인권 문제, 정의로운 거래, 기업 윤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책임감을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 역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6)
- 지난 칼럼에서는 태권도선교연합회의 필요성과 유용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태권도 선교는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제 그 성장이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인 선교로 발전하고, 총체적인 태권도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선교사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연합회의 결정 아래 마련된 기준과 표준을 바탕으로 공통된 가치와 내용을 가지고 사역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효과적인 태권도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협력 선교와 연합회를 통한 전략 개발을 통해 질적인 성장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일반적으로 각 선교회는 고유한 비전과 특성에 따라 선교사 자격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선교사는 일정 기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격을 갖추도록 한 후 파송합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본격적인 선교 열풍이 일기 시작하면서, 파송 교단이나 선교회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자격이 없거나 준비가 부족한 선교사들이 다수 파송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선교지와 선교사들 사이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으며, 이는 결국 오늘날 선교지를 오염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저명한 선교학자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내가 선교사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선교사들을 돌려보내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태권도 지도자로서의 자격과,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태권도를 잘하는 신앙 좋은 성도, 군대 초단이지만 선교에 열정을 가진 성도, 혹은 국가대표급 실력을 갖추었지만 복음 전파의 능력이 부족한 성도 등, 태권도와 선교 사이의 균형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선교사로 파송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태권도 선교는 여전히 일반 선교를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태권도선교연합회를 구성하여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인 태권도 선교와 선교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적절한 선교훈련과 신학교육을 수료한 사람들 중에서 검증된 자들을 선별하여 파송함으로써, 한국교회 선교의 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기준을 정하는 중요한 이유는 자격이 없는 선교사를 선별해 배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목적은, 설정된 기준에 따라 태권도 선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여, 자신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선교신학적으로 필요한 영역은, 적합한 역량을 갖춘 태권도 선교회나 선교사 훈련기관들과 협력하여, 태권도 기술체계와 선교신학이 균형을 이루는 총체적 태권도 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선교사로 세워야 합니다. 또한, 신학대학교의 선교학과와 협력하여 해당 과목들에 대한 위탁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6)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5): 태권도 선교회 연합에 대한 책임
- 태권도 선교회들은 각기 다른 장점들이 있습니다. 신앙훈련, 신학훈련, 태권도 기술훈련, 태권도선교 현지화, 엘리트 태권도인 양성, 주일학교 운영을 위한 태권도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태권도선교가 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연합선교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점입니다. 만일 모든 태권도 선교회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연합회가 조직되어 있다면, 각 선교회의 장점을 체계화하여 태권도선교를 통해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고 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공유함으로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태권도선교를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태권도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선교신학적으로 재해석된 선임 태권도 선교사들의 현장 경험과 태권도 정신체계, 그리고 상황에 적절한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선교신학적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역량 있는 선교사로서 사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권도연합선교회는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확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태권도선교와 선교사에 관련된 기준과 표준은 어느 한 선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회를 통해 결정될 때 비로소 그 권위가 인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회들이 함께 연구하고 결정하여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으로 정립된 내용들을 선교신학자들의 검증을 통해 확증하고 그것을 모든 태권도 선교사가 공통적으로 이해할 때, 태권도 선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혼란을 경험하지 않게 될 것이며, 공통된 가치를 추구함으로 태권도 선교회들 간 협력과 연합사역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권도 선교회들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선교회들 간의 갈등이나 문제로 인함이 아니라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만을 선교로 인정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신복음주의 영향으로 인하여 태권도선교가 이차적 선교 수단으로 사용된 것과 태권도 수련내용에 관한 선교신학적 해석이 없는 일과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복음적인 총체적 선교론을 추구하고 있고, 태권도 정신체계도 제창되어 성경적 해석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관하여 태권도선교 연합회가 주도하고 태권도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한다면 복음적인 총체적태권도선교가 활발하게 수행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권도선교는 이차적 선교수단으로 활용됨으로 선교신학적 평가나 선교 사역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었습니다. 하루속히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구성되고 태권도선교에 관련된 요소들이 선교신학적 체계를 갖추게 될 때, 태권도선교는 일반 복음선교와 동등하게 선교신학적 평가를 받을 내용들을 갖춘 일차적 선교 수단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5): 태권도 선교회 연합에 대한 책임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4)
- 제가 9단 승단심사를 볼 때, 함께 심사에 지원한 분들 대부분은 60대였고, 그 중 절반 이상은 관절염이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범님은 전라북도에서 한의사를 대동한 채 심사를 준비하며, 틈틈이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기본 발차기조차 힘겨운 상황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날고 뛰며 활기차게 수련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여 품새에서 뛰어 옆차기를 할 때, 디딤발이 바닥에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옆차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히 해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태권도를 기술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는 시기는 매우 짧습니다. 지금은 540도 발차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곧 360도 발차기도 힘들어지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단순한 뒤차기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태권도인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성숙한 태권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태권도의 기술체계는 곧 정신체계를 추구하기 위한 통로와 같습니다. 힘든 수련 과정을 통해 자신의 현재 실력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기술이 향상되는 만큼 태권도인으로서의 인격도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쪽짜리조차 되지 않는 태권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젊을 때는 실력으로 수련자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인격과 성품, 그리고 영성으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나이가 든 태권도 선교사가 더 이상 젊은 사범들처럼 수련을 지도하지 못할 때, 가까운 곳에 온 젊은 사범에게 수련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태권도 선교가 아닌 단지 기술만 가르쳐 왔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선교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하며, 그러한 현상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정확한 평가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통해 ‘가치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태권도 선교사 자신도 실력으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천하는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올바르게 총체적 태권도 선교를 수행하는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발견한 사실은, 태권도가 세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태권도에 정신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태권도의 정체성은 지금처럼 기술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체계에 있다는 사실을 국기원이 하루속히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 기독 태권도인들이 성경적으로 해석된 태권도 정신의 가치를 통해 그 우수성을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4)
-
-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 2025년 4월 3일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장 7절 아버지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나의 소망이 여호와께 있는 줄 아나이다. 오늘도 오직 주님만이 나의 반석이시고,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산성이시기에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으니.. 세상의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소망이신 내 주님만 바라며 살아가는 복 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여러분의 하루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위 기도문은 나의 고백으로 계속 기도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기도의 끝에 여운을 남겨둡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아침 기도문'을 시작하여 '삶의 기도문'으로 완성되기를 축복합니다. -살아가는 교회 황영찬 목사-
-
- 태권도선교
-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3)
-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미국 NBC 방송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America’s Got Talent에서 결승까지 진출한 적이 있습니다. 공중을 날고, 회전하며 차고, 격파하는 역동적인 퍼포먼스에 관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시범이 끝나자 관객 전원이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태권도의 강한 힘과 파괴력이 아름다운 예술적 동작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보며 태권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권도의 정체성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화려한 시범에 있지 않고, 여전히 그 정신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만약 기술 체계가 태권도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면, 더 멋지고 대중적인 스포츠형 무도가 등장할 경우, 세계는 태권도에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계인이 태권도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태권도가 정신체계를 기반으로 그 위에 기술체계가 세워진, 가치의 천장이 높은 독특하고 균형 잡힌 수준 높은 스포츠형 무도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은 태권도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총체적 태권도선교의 핵심은, 태권도의 정신체계를 수련 과정을 통해 기독교의 가치로 실천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단순히 기술체계 중심의 사역을 넘어서, 정신체계와 통합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기원은 설립 50년 만에 태권도의 정신체계를 정립하여 발표했지만, 그에 따른 책임 있는 교육과 실천은 아직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태권도 정신체계를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기독교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일은 총체적 태권도선교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며, 동시에 태권도의 역사성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국기원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대한민국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많은 국내 태권도 지도자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태권도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바라기는 모든 기독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기독교의 가치로 해석하고 (태권도 정신의 기독교적 해석에 대한 내용은 5월부터 칼럼을 통해 연재할 예정입니다) 그 가치를 실제 삶에서 실천함으로써 태권도를 통해 복음이 전파될 뿐 아니라, 일반 태권도 문화가 기독교적 문화로 정착되는 비전을 함께 나누고 실현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떠나, 모든 태권도 도장 안에서 수련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겸손히 섬기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도록 훈련하며, 예수님을 알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배워갈 수 있는 새로운 태권도장 문화를 세우는 일에 기독 태권도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3)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2)
- 태권도 선교사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수련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은 수련 과정을 통해 복음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기독교 진리와 신앙에 관심을 갖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증인 된 삶을 사는 것이며, 복음에 대한 해석적 삶이라고 이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실존적인 내 삶이 신학의 중심이 되는 것은 총체적 선교론과 상황화 신학에서도 핵심 개념입니다. 사실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것은 단지 효과적인 선교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셨던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님의 기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까지도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기독교 교리에 매력을 느껴서 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이웃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료들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에게 복음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수련자들은 지도자의 삶과 행동을 보고 교회에 갈지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도자가 행복해 보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때, 수련자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된 수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확장하는 이유는 단순한 개인의 만족이나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힘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태권도 정신이 말하는 바람직한 태권도인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 규정됩니다. 태권도 선교사의 삶은 수련자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수련자들이 자신을 닮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교사 개인을 닮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태권도 지도자의 전통적인 권위적 태도를 내려놓고, 자신 역시 더 높은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임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수련자들도 그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거나,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는 데서 만족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환경오염, 인권 문제, 정의로운 거래, 기업 윤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책임감을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 역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2)
실시간 태권도선교 기사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6)
- 지난 칼럼에서는 태권도선교연합회의 필요성과 유용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태권도 선교는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제 그 성장이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인 선교로 발전하고, 총체적인 태권도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선교사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연합회의 결정 아래 마련된 기준과 표준을 바탕으로 공통된 가치와 내용을 가지고 사역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효과적인 태권도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협력 선교와 연합회를 통한 전략 개발을 통해 질적인 성장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일반적으로 각 선교회는 고유한 비전과 특성에 따라 선교사 자격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선교사는 일정 기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격을 갖추도록 한 후 파송합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본격적인 선교 열풍이 일기 시작하면서, 파송 교단이나 선교회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자격이 없거나 준비가 부족한 선교사들이 다수 파송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선교지와 선교사들 사이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으며, 이는 결국 오늘날 선교지를 오염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저명한 선교학자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내가 선교사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선교사들을 돌려보내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태권도 지도자로서의 자격과,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태권도를 잘하는 신앙 좋은 성도, 군대 초단이지만 선교에 열정을 가진 성도, 혹은 국가대표급 실력을 갖추었지만 복음 전파의 능력이 부족한 성도 등, 태권도와 선교 사이의 균형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선교사로 파송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태권도 선교는 여전히 일반 선교를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태권도선교연합회를 구성하여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인 태권도 선교와 선교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적절한 선교훈련과 신학교육을 수료한 사람들 중에서 검증된 자들을 선별하여 파송함으로써, 한국교회 선교의 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기준을 정하는 중요한 이유는 자격이 없는 선교사를 선별해 배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목적은, 설정된 기준에 따라 태권도 선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여, 자신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선교신학적으로 필요한 영역은, 적합한 역량을 갖춘 태권도 선교회나 선교사 훈련기관들과 협력하여, 태권도 기술체계와 선교신학이 균형을 이루는 총체적 태권도 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선교사로 세워야 합니다. 또한, 신학대학교의 선교학과와 협력하여 해당 과목들에 대한 위탁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6)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5): 태권도 선교회 연합에 대한 책임
- 태권도 선교회들은 각기 다른 장점들이 있습니다. 신앙훈련, 신학훈련, 태권도 기술훈련, 태권도선교 현지화, 엘리트 태권도인 양성, 주일학교 운영을 위한 태권도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태권도선교가 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연합선교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점입니다. 만일 모든 태권도 선교회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연합회가 조직되어 있다면, 각 선교회의 장점을 체계화하여 태권도선교를 통해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고 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공유함으로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태권도선교를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태권도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선교신학적으로 재해석된 선임 태권도 선교사들의 현장 경험과 태권도 정신체계, 그리고 상황에 적절한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선교신학적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역량 있는 선교사로서 사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권도연합선교회는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확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태권도선교와 선교사에 관련된 기준과 표준은 어느 한 선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회를 통해 결정될 때 비로소 그 권위가 인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회들이 함께 연구하고 결정하여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으로 정립된 내용들을 선교신학자들의 검증을 통해 확증하고 그것을 모든 태권도 선교사가 공통적으로 이해할 때, 태권도 선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혼란을 경험하지 않게 될 것이며, 공통된 가치를 추구함으로 태권도 선교회들 간 협력과 연합사역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권도 선교회들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선교회들 간의 갈등이나 문제로 인함이 아니라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만을 선교로 인정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신복음주의 영향으로 인하여 태권도선교가 이차적 선교 수단으로 사용된 것과 태권도 수련내용에 관한 선교신학적 해석이 없는 일과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복음적인 총체적 선교론을 추구하고 있고, 태권도 정신체계도 제창되어 성경적 해석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관하여 태권도선교 연합회가 주도하고 태권도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한다면 복음적인 총체적태권도선교가 활발하게 수행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권도선교는 이차적 선교수단으로 활용됨으로 선교신학적 평가나 선교 사역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었습니다. 하루속히 태권도선교연합회가 구성되고 태권도선교에 관련된 요소들이 선교신학적 체계를 갖추게 될 때, 태권도선교는 일반 복음선교와 동등하게 선교신학적 평가를 받을 내용들을 갖춘 일차적 선교 수단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5): 태권도 선교회 연합에 대한 책임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4)
- 제가 9단 승단심사를 볼 때, 함께 심사에 지원한 분들 대부분은 60대였고, 그 중 절반 이상은 관절염이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범님은 전라북도에서 한의사를 대동한 채 심사를 준비하며, 틈틈이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기본 발차기조차 힘겨운 상황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날고 뛰며 활기차게 수련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여 품새에서 뛰어 옆차기를 할 때, 디딤발이 바닥에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옆차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히 해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태권도를 기술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는 시기는 매우 짧습니다. 지금은 540도 발차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곧 360도 발차기도 힘들어지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단순한 뒤차기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태권도인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성숙한 태권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태권도의 기술체계는 곧 정신체계를 추구하기 위한 통로와 같습니다. 힘든 수련 과정을 통해 자신의 현재 실력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기술이 향상되는 만큼 태권도인으로서의 인격도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쪽짜리조차 되지 않는 태권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젊을 때는 실력으로 수련자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인격과 성품, 그리고 영성으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나이가 든 태권도 선교사가 더 이상 젊은 사범들처럼 수련을 지도하지 못할 때, 가까운 곳에 온 젊은 사범에게 수련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태권도 선교가 아닌 단지 기술만 가르쳐 왔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선교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하며, 그러한 현상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정확한 평가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통해 ‘가치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태권도 선교사 자신도 실력으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천하는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올바르게 총체적 태권도 선교를 수행하는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발견한 사실은, 태권도가 세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태권도에 정신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태권도의 정체성은 지금처럼 기술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체계에 있다는 사실을 국기원이 하루속히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 기독 태권도인들이 성경적으로 해석된 태권도 정신의 가치를 통해 그 우수성을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4)
-
-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 2025년 4월 3일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장 7절 아버지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나의 소망이 여호와께 있는 줄 아나이다. 오늘도 오직 주님만이 나의 반석이시고,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산성이시기에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으니.. 세상의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소망이신 내 주님만 바라며 살아가는 복 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여러분의 하루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위 기도문은 나의 고백으로 계속 기도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기도의 끝에 여운을 남겨둡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아침 기도문'을 시작하여 '삶의 기도문'으로 완성되기를 축복합니다. -살아가는 교회 황영찬 목사-
-
- 태권도선교
-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오늘도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나이다"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3)
-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미국 NBC 방송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America’s Got Talent에서 결승까지 진출한 적이 있습니다. 공중을 날고, 회전하며 차고, 격파하는 역동적인 퍼포먼스에 관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시범이 끝나자 관객 전원이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태권도의 강한 힘과 파괴력이 아름다운 예술적 동작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보며 태권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권도의 정체성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화려한 시범에 있지 않고, 여전히 그 정신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만약 기술 체계가 태권도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면, 더 멋지고 대중적인 스포츠형 무도가 등장할 경우, 세계는 태권도에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계인이 태권도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태권도가 정신체계를 기반으로 그 위에 기술체계가 세워진, 가치의 천장이 높은 독특하고 균형 잡힌 수준 높은 스포츠형 무도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은 태권도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총체적 태권도선교의 핵심은, 태권도의 정신체계를 수련 과정을 통해 기독교의 가치로 실천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단순히 기술체계 중심의 사역을 넘어서, 정신체계와 통합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기원은 설립 50년 만에 태권도의 정신체계를 정립하여 발표했지만, 그에 따른 책임 있는 교육과 실천은 아직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태권도 정신체계를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기독교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일은 총체적 태권도선교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며, 동시에 태권도의 역사성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국기원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대한민국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많은 국내 태권도 지도자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태권도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바라기는 모든 기독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정신체계를 기독교의 가치로 해석하고 (태권도 정신의 기독교적 해석에 대한 내용은 5월부터 칼럼을 통해 연재할 예정입니다) 그 가치를 실제 삶에서 실천함으로써 태권도를 통해 복음이 전파될 뿐 아니라, 일반 태권도 문화가 기독교적 문화로 정착되는 비전을 함께 나누고 실현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떠나, 모든 태권도 도장 안에서 수련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겸손히 섬기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도록 훈련하며, 예수님을 알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배워갈 수 있는 새로운 태권도장 문화를 세우는 일에 기독 태권도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3)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2)
- 태권도 선교사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수련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은 수련 과정을 통해 복음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기독교 진리와 신앙에 관심을 갖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증인 된 삶을 사는 것이며, 복음에 대한 해석적 삶이라고 이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실존적인 내 삶이 신학의 중심이 되는 것은 총체적 선교론과 상황화 신학에서도 핵심 개념입니다. 사실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것은 단지 효과적인 선교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셨던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님의 기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까지도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기독교 교리에 매력을 느껴서 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이웃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료들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에게 복음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수련자들은 지도자의 삶과 행동을 보고 교회에 갈지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도자가 행복해 보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때, 수련자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태권도를 수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된 수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확장하는 이유는 단순한 개인의 만족이나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힘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태권도 정신이 말하는 바람직한 태권도인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 규정됩니다. 태권도 선교사의 삶은 수련자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수련자들이 자신을 닮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교사 개인을 닮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태권도 지도자의 전통적인 권위적 태도를 내려놓고, 자신 역시 더 높은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임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수련자들도 그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거나,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는 데서 만족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환경오염, 인권 문제, 정의로운 거래, 기업 윤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책임감을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 역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2)
-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1): 사회적 책임
- 국기원이 정한 표준 태권도 정신은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하라” 입니다. 이는 태권도인이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있음을 의미합니다. 현대 사회는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살라는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말은 단순한 공익광고 내용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권도 정신은 바람직한 태권도인이 추구해야 할 삶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정의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권도의 가치를 기독교적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통해 수련자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또한 태권도장은 선교공동체로서 항상 세상의 구원을 향한 방향성을 가져야 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인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에 존재한다. 남들을 위해 산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다. 개인의 삶은 다른 생명들의 삶을 고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때만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기원이 정한 태권도 정신은 적극적인 사회참여적 태도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사회적 약자를 돕고,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길 만큼 올바른 기독교 가치관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2021년에 정립된 “태권도 정신체계”는 아직 모든 태권도인들의 논의 주제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권도가 세계적인 무도형 스포츠로 성장하였고, 1억 5천 만명의 태권도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전 세계 태권도인들 대부분은 새로운 태권도 정신체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며, 전 지구적 차원의 논의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태권도 선교사는 국기원이 앞장서기를 기대하기 보다, 먼저 태권도 정신을 세상에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권도가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좋은 무도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또한 선교공동체 특성을 가진 태권도장을 통해 복음전파의 환경을 확장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로 해석된 태권도 정신체계가 보편적인 태권도 정신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 바람직한 태권도인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는 태권도인을 의미합니다. 모든 기독태권도인은 태권도 정신이 요구하는 사회참여적 태도를 기독교적 차원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시대의 역사적 지평에서 활발히 일하시도록 태권도 수련 과정 속에서 행동하는 수련자들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
- 태권도선교
- 칼럼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책임 (11): 사회적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