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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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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일 태권도신학연구소장./태권도선교신문 DB

 

우간다 변두리 지역에서 세간살이도 거의 없는 흙집에 사는 사람들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문화에 대한 이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세계 곳곳의 문화를 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가진 그룹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상황화한다는 의미를 한 지역의 문화를 전체적으로 상황화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그 문화 안에서도 관심 분야별, 성별, 세대별, 취미별, 직업별 등에 따른 세분화된 방식으로 상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선교의 상황화는 관심분야 별 상황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 총체적인 선교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1974년 로잔대회에서 결의한 로잔선언문 내용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로잔대회는 전도와 사회참여 문제로 양극화 되어온 교회의 혼돈 속에서 성경의 빛 아래 신학적 입장을 정립한 대회였습니다. 양극화란 복음전도만을 선교라고 여기는 복음주의자들과 사회참여 없는 선교는 진정한 선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WCC 계통을 말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계통에 편중되어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을 선교라고 생각했으며 그 외 전문인선교 분야는 선교를 돕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로잔대회를 통해 복음전파와 사회 참여적인 행동이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복음전파의 우선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순서적이 아니라 신학적이며 논리적인 우선성을 의미함) 선교신학적 견해를 복음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서로 수용하면서 사회 참여적 행동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복음전파와 복음적 삶의 실천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총체적선교’ 개념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태권도선교는 일반선교를 위한 부차적 역할에 한정되어 있던 차원에서 벗어나 태권도선교 자체를 통해서도 총체적선교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교회는 근대적 선교신학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태권도나 스포츠, 기타 많은 전문인 선교가 일반선교로 인정받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쉬운 것은 태권도 선교사들 중에도 여전히 태권도선교의 목적은 일반선교를 위한 중간매개체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그런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 시대 선교신학의 발전에 부응하여 태권도선교의 올바른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태권도를 통해 복음전파와 복음적 삶이 균형을 이루는 총체적선교를 실천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연구하고, 함께 태권도선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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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신학이 필요한 이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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