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신학이 수행되는 사회적 자리일 것입니다. 시대, 혹은 문화와 상황적 환경에 따라,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는 양식과 계시를 사고할 수 있도록 탐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의 핵심은 타이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태권도선교는 일반선교 활성화를 위한 2차적 선교 도구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선교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태권도선교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립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태권도선교는 한국교회가 선교 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태권도선교신학을 위한 질량적 토대가 마련되었고 선교신학적 체계를 갖추어야 할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태권도선교가 오늘에 이르도록 헌신하신 1세대 태권도 선교사님들의 노고를 모든 기독태권도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태권도선교의 출발 시기는 기준점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태권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전도의 통로로 삼는 것을 태권도선교라고 정의한다면 지금부터 대략 50년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기독태권도인들은 짐 속에 성경책과 도복과 검은 띠를 넣고 떠나 세계 각지에서 태권도를 복음전도의 1차적 혹은 2차적 도구로 삼아 예수께서 명령하신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태권도가 복음전도의 탁월한 도구임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헌신과 태권도를 통한 하나님 경험을 총체적선교 개념을 통해 태권도선교신학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태권도 수련과정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명료하고 포괄적으로 기술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선교신학이 없는 태권도선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혼란입니다. ‘태권도 선교사 설문조사(2022)’에 따르면 태권도선교에 오래 헌신해 온 선교사들 중에 태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에 대하여 갈등을 경험하는 선교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선교사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선교지에 와서 살고 있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대하여 성경적인 인식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통해 태권도 선교사는 자신의 사역을 성경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태권도 선교사로 선택하셨음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자리를 소명의 자리로 여기고 그곳에서 태권도 선교사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에 관련하여 칼럼을 쓰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태권도 선교사들 중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태권도 선교사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태권도 선교사는 정체성이 분명한 ‘선교사 집단’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