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9-1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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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섭 선교사./태권도선교신문 DB

조선에 복음이 절실히 필요하던 때, 미국에서 한 여성 독신 선교사가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이 땅을 향해 나아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루비 라헬 캔드릭입니다.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낯선 조선 땅 황해도 개성에 발을 디딘 그녀는 한영학원의 교사로, 또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조용히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마주한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깊은 외로움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전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표현할 수 없고, 사람을 향한 사랑은 가득하지만 그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통했고, 언어는 서툴렀지만 사랑은 분명하게 전해졌습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1908년 여름, 갑작스러운 병이 그녀의 삶을 멈추게 했습니다. 급성 맹장염이었습니다. 오늘날이라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지만, 당시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그녀는 조선에서의 사역을 충분히 펼쳐보기도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짧은 생애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순간, 한 문장을 남깁니다.


“내가 죽거든, 텍사스의 청년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열 명씩, 스무 명씩, 쉰 명씩 한국으로 나오라고.”


어쩌면 그녀의 삶보다 더 길게 남은 것은 이 한 문장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편지는 바다를 건너 텍사스의 한 청년 집회에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글을 읽은 다음 날, 또 하나의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그녀의 죽음이었습니다. 슬픔이 그들을 덮었지만, 그 슬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이들의 결단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무 명이 넘는 청년들이 그녀를 대신하여 조선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 한 사람의 순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멀리, 더 깊이 이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묵상할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일하실까?”


우리는 길게, 많이, 크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와 분명한 열매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아주 짧은 순간을 통해,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자리에서조차 하나님은 새로운 부르심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어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러할지 모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하루,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반복되는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고, 보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조용히 다시 묻게 됩니다.


“주님,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주님께서 저를 부르신 자리입니까?”


그 질문 앞에서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이미 의미 있는 하루가 됩니다.


루비 라헬 캔드릭의 삶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길이로 일하지 않으시고, 깊이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조용히 이 길을 걸어갑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지 모르는 작은 불씨 하나를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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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섭 선교사 "짧은 삶, 긴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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