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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3)
    선교전략가인 도날드 맥가브런 Donald McGavran은 ‘미래 선교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선교사의 정체성 위기’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시대 선교사들의 정체성 혼란이 심각한 상황이며 점차 그 현상은 심화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대부분 이차적 선교를 수행하고 있는 태권도 선교사들의 정체성 혼란 현상은 더욱 심각한 수준입니다. 선교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삶의 자리에 대한 성경적 이해로 확립됩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태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에 대한 이해 이전에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태권도 선교사들 중에는 자신의 태권도 실력과 경험, 태권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같이 태권도를 중심으로 정체성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권도 선교사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으며 그중에서 타 문화권 선교를 위해 선교사로 부르셨고 그 안에서 태권도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태권도 선교사로서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내적 확신을 통해 태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분명한 태권도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동력을 성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며 담대하게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바탕으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는 선교사는 자신의 존재와 사명에 대하여 분명히 이해하게 되며, 현재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선교적 경험은 오직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임을 알게 되고 오직 결과를 만드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신실한 태도를 가지고 충성할 때, 하나님은 그의 선교적 목적을 성취해 가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기독태권도 사범 (師 스승 사 範 법 범)으로서 단순히 수련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거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태권도인이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실천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수련자들은 태권도 수련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교육받고 훈련하게 됩니다. 태권도선교의 최종적인 목표는 수련자들이 태권도 선교사가 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총체적 삶을 세상에서 재생산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최종적인 목표의 시작은 태권도 선교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한 태권도 선교사만이 수련자들을 자신의 제자가 아닌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30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2)
    총체적선교는 전도의 우선성에 집중하여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했던 복음주의 신앙 안에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통합을 강조한 개신교 선교신학입니다. 총체적선교 개념은 1974년 제1차 로잔대회를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2001년 ‘미가 선언문’을 분기점으로 전 세계 개신교회의 중심적 선교신학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선교 개념은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선교신학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적 활동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말씀선포와 사회참여적 행동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말하는 총체적선교이며 총체적선교는 성경적 선교입니다. 총체적선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일이며 그런 삶은 흡입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교회로 끌어들였고 기독교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면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고, 따르지 않으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립니다. 개신교 선교가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복음전도를 위한 수단과 복음전도의 열매 정도로 여기면서 선교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이 무너지며 이원화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들어서 총체적선교 개념의 확산과 함께 선교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폭이 넓어지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라는 해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선교적 사명을 가진 선교적 존재이며 선교적 존재 양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해외로 파송된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부르시고 보냄 받은 사람을 말하며 그들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보내셨다는 사실에 대한 내적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적 확신은 선교사의 정체성 확립에 매우 중요하며 그것을 근거로 선교사는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는 일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열정을 가지고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내적 확신이 부족한 선교사는 자신의 의지와 계획에 의한 외형적인 사역과 가시적 결과에 집중하게 되며 사역을 통해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여 오래지 않아 영적 탈진이나 정체성 혼란을 경험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체로 정체성 혼란은 선교사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 원인은 매우 다양하며 내적 확신이 부족한 것이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다만 정체성 혼란은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부정적으로만 여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체성 혼란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삼아 사명감을 더욱 공고히 할 뿐 아니라, 혼란 이전의 상태에 비하여 선교사의 사명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장되어 더욱 성숙한 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23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1)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신학이 수행되는 사회적 자리일 것입니다. 시대, 혹은 문화와 상황적 환경에 따라,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는 양식과 계시를 사고할 수 있도록 탐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의 핵심은 타이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태권도선교는 일반선교 활성화를 위한 2차적 선교 도구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선교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태권도선교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립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태권도선교는 한국교회가 선교 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태권도선교신학을 위한 질량적 토대가 마련되었고 선교신학적 체계를 갖추어야 할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태권도선교가 오늘에 이르도록 헌신하신 1세대 태권도 선교사님들의 노고를 모든 기독태권도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태권도선교의 출발 시기는 기준점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태권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전도의 통로로 삼는 것을 태권도선교라고 정의한다면 지금부터 대략 50년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기독태권도인들은 짐 속에 성경책과 도복과 검은 띠를 넣고 떠나 세계 각지에서 태권도를 복음전도의 1차적 혹은 2차적 도구로 삼아 예수께서 명령하신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태권도가 복음전도의 탁월한 도구임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헌신과 태권도를 통한 하나님 경험을 총체적선교 개념을 통해 태권도선교신학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태권도 수련과정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명료하고 포괄적으로 기술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선교신학이 없는 태권도선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혼란입니다. ‘태권도 선교사 설문조사(2022)’에 따르면 태권도선교에 오래 헌신해 온 선교사들 중에 태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에 대하여 갈등을 경험하는 선교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선교사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선교지에 와서 살고 있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대하여 성경적인 인식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통해 태권도 선교사는 자신의 사역을 성경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태권도 선교사로 선택하셨음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자리를 소명의 자리로 여기고 그곳에서 태권도 선교사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에 관련하여 칼럼을 쓰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태권도 선교사들 중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태권도 선교사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태권도 선교사는 정체성이 분명한 ‘선교사 집단’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16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선교신학의 유익 (7)
    지금까지 대부분 선교사들이 복음전도에 집중하여 사회참여를 등한히 여기는 현상들로 인해 총체적선교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지만 모든 선교는 본질적으로 복음선포와 사회참여적 삶이 통합된 총체적선교입니다. 따라서 태권도선교는 당연히 총체적선교가 되어야 하고, 태권도선교신학이 바로 그 틀이 될 수 있습니다. 태권도선교신학을 근간으로 한 총체적태권도선교를 선교사가 수행할 때 수련자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태권도선교는 선교지 상황과 선교사들의 목적과 계획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태권도선교에 대한 평가 역시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일괄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태권도가 사용되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 평가되어야 합니다. 현재 선교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태권도 선교사는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태권도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일반 태권도 사범들과 다를 바 없이 선교지에서 태권도장을 경영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런 선교사는 선교적 차원과 의도를 가지고 태권도장을 경영하더라도 실제로 복음을 선포하거나 예배적 행위를 하지 않아 외형적으로는 해외에서 태권도장을 경영하는 일반 사범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둘째, 태권도를 사람들을 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들은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일반 태권도 사범들과 같은 방식으로 태권도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수련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교회 혹은 신앙공동체로 인도하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이들 역시 태권도 수련의 차원과 의도는 선교적일지라도 태권도를 선교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태권도를 전도 대상자를 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런 선교사는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일반 사범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또한 태권도 수련과 별도로 선교 활동을 합니다. 태권도 선교사의 역할이 태권도 지도자와 기독교 선교사로 구분됩니다. 넷째, 총체적태권도선교를 수행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런 선교사는 태권도에 내포된 다양한 가치들을 성경적으로 재해석하여 수련과정을 통해 실천하도록 훈련합니다. 또한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때에 복음을 선포하여 수련자들이 도장 뿐 아니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지도합니다. 이런 선교사는 수련자들에게 태권도 수련과정을 통하여 성경적 가치관과 기독교 세계관을 심어 주어 그들의 삶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변혁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는 말씀과 같이 태권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자와 복음을 전달받는 자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기술체계의 습득 이상의 유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유익은 태권도를 수행하는 선교사와 수련자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총체적으로 변화되는 유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총체적태권도선교의 근간이자 틀은 태권도선교신학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확한 복음과 선교신학적 태권도선교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인 태권도선교는 총체적태권도선교이며, 태권도선교신학 없는 총체적태권도선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09
  • 필리핀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 승급심사 성공적으로 마쳐
    필리핀 리잘 바라스시의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이 최근 승급심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심사에는 20명의 태권도 수련생이 참가하여 기본 동작, 품새, 호신술, 겨루기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며 성숙한 태권도 기량을 뽐냈다. 특히 수련생들은 긴장된 표정 속에서도 열정과 집중력을 발휘하여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증명했다. 하얀 띠에서 빨간 띠까지 승급을 이룬 이들은 각각의 인증서를 받으며 성취감과 기쁨을 나눴다. 오준섭 선교사는 "이번 승급심사는 6개월마다 진행되는데,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하여 그간의 노력을 빛내 주었다"며, "꾸준한 훈련의 성과가 드러나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학생들이 태권도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더 큰 꿈과 비전을 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은 단순히 기술 연마에 그치지 않고, 수련생들이 자신감을 얻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고 있다. 태권도의 인내와 존중 정신을 배우는 과정은 이들이 앞으로 성장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오는 11월에는 마닐라 카인타에서 열리는 태권도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련생들은 대회에서 기량을 발휘하며 자아를 확립할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한,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은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태권도를 통해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승급심사의 성공은 학생들뿐 아니라 교회와 지역사회에 큰 축복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열방선교교회의 사역이 더 큰 열매를 맺길 기도하게 된다. ■ 아래는 심사 참여 명단 Turning Yellow - Rhamiel Plumo - Keeiziah Louisse Mendoza - Princess Albiola - Rj Villanueva - Elmer Junior Taruc - Anjhielenne Villanueva - Marissa J. Pilar - Mikhaela Jimenez Turning High Yellow: - Jade Honrubia - Samantha Dordas Turning Low Blue - Ray Angelo Reyteran - Mushahi Sakai Turning High Blue - Johnpaul Gianan - Seika D. Sakai - Josue frank p. franciso - Lord Dominick M. Estrera - Renzjeric M. Robredillo Turning Low Red - Alexis John Ancheta - Marco Delacruz - Michael Florendo Jr.
    • 태권도선교
    2024-11-02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선교신학의 유익 (6)
    태권도선교를 신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지닌 선교사는 태권도 수련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신학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 양식과 계시에 대해 본질적 차이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학적 해석은 개인의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이해 수준, 시대적 흐름과 상황, 그리고 해석 능력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다양성이 신학의 한계이기도 하나 동시에 오늘의 상황에 대하여 신실한 태도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 신학자의 시대적 사명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기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성경 연구와 폭넓은 독서를 통해 신학적 사고 능력을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갈고 닦은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이해는 선교사 자신의 문화 안에서 습득된 것입니다. 태권도 선교사가 수련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자신의 문화에서 습득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자들이 그들의 문화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태권도 정신체계 역시 한국인의 정서와 전통에 따라서 국기원이 정립한 정신체계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전통 안에서 태권도 정신체계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표현을 찾아서 수련자들에게 전해야 효과적인 정신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초부터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 일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해 수련자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선교사가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고 올바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태권도 선교사가 수련자들에게 배우지 않고는 태권도 기술은 가르칠 수 있어도 태권도를 통해 복음은 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태권도 선교사는 열정을 가지고 달려 나가기 전에, 서둘러 신발을 벗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사역을 신학적으로 바라보며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적 주제들을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서술해 놓은 조직신학 책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틈나는 대로 공부하고 사역에 적용하는 선교사는 자신의 태권도 사역이 신학적이며 총체적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02

실시간 태권도선교 기사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3)
    선교전략가인 도날드 맥가브런 Donald McGavran은 ‘미래 선교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선교사의 정체성 위기’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시대 선교사들의 정체성 혼란이 심각한 상황이며 점차 그 현상은 심화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대부분 이차적 선교를 수행하고 있는 태권도 선교사들의 정체성 혼란 현상은 더욱 심각한 수준입니다. 선교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삶의 자리에 대한 성경적 이해로 확립됩니다. 따라서 태권도 선교사는 태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에 대한 이해 이전에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태권도 선교사들 중에는 자신의 태권도 실력과 경험, 태권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같이 태권도를 중심으로 정체성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권도 선교사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으며 그중에서 타 문화권 선교를 위해 선교사로 부르셨고 그 안에서 태권도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태권도 선교사로서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내적 확신을 통해 태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분명한 태권도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동력을 성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며 담대하게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바탕으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는 선교사는 자신의 존재와 사명에 대하여 분명히 이해하게 되며, 현재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선교적 경험은 오직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임을 알게 되고 오직 결과를 만드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신실한 태도를 가지고 충성할 때, 하나님은 그의 선교적 목적을 성취해 가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기독태권도 사범 (師 스승 사 範 법 범)으로서 단순히 수련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거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태권도인이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실천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수련자들은 태권도 수련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교육받고 훈련하게 됩니다. 태권도선교의 최종적인 목표는 수련자들이 태권도 선교사가 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총체적 삶을 세상에서 재생산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최종적인 목표의 시작은 태권도 선교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한 태권도 선교사만이 수련자들을 자신의 제자가 아닌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30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2)
    총체적선교는 전도의 우선성에 집중하여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했던 복음주의 신앙 안에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통합을 강조한 개신교 선교신학입니다. 총체적선교 개념은 1974년 제1차 로잔대회를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2001년 ‘미가 선언문’을 분기점으로 전 세계 개신교회의 중심적 선교신학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선교 개념은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선교신학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적 활동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말씀선포와 사회참여적 행동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말하는 총체적선교이며 총체적선교는 성경적 선교입니다. 총체적선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일이며 그런 삶은 흡입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교회로 끌어들였고 기독교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면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고, 따르지 않으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립니다. 개신교 선교가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복음전도를 위한 수단과 복음전도의 열매 정도로 여기면서 선교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이 무너지며 이원화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들어서 총체적선교 개념의 확산과 함께 선교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폭이 넓어지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라는 해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선교적 사명을 가진 선교적 존재이며 선교적 존재 양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해외로 파송된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부르시고 보냄 받은 사람을 말하며 그들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보내셨다는 사실에 대한 내적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적 확신은 선교사의 정체성 확립에 매우 중요하며 그것을 근거로 선교사는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는 일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열정을 가지고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내적 확신이 부족한 선교사는 자신의 의지와 계획에 의한 외형적인 사역과 가시적 결과에 집중하게 되며 사역을 통해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여 오래지 않아 영적 탈진이나 정체성 혼란을 경험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체로 정체성 혼란은 선교사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 원인은 매우 다양하며 내적 확신이 부족한 것이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다만 정체성 혼란은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부정적으로만 여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체성 혼란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삼아 사명감을 더욱 공고히 할 뿐 아니라, 혼란 이전의 상태에 비하여 선교사의 사명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장되어 더욱 성숙한 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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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11-23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1)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신학이 수행되는 사회적 자리일 것입니다. 시대, 혹은 문화와 상황적 환경에 따라,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는 양식과 계시를 사고할 수 있도록 탐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의 핵심은 타이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태권도선교는 일반선교 활성화를 위한 2차적 선교 도구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선교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태권도선교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립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태권도선교는 한국교회가 선교 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태권도선교신학을 위한 질량적 토대가 마련되었고 선교신학적 체계를 갖추어야 할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태권도선교가 오늘에 이르도록 헌신하신 1세대 태권도 선교사님들의 노고를 모든 기독태권도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태권도선교의 출발 시기는 기준점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태권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전도의 통로로 삼는 것을 태권도선교라고 정의한다면 지금부터 대략 50년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기독태권도인들은 짐 속에 성경책과 도복과 검은 띠를 넣고 떠나 세계 각지에서 태권도를 복음전도의 1차적 혹은 2차적 도구로 삼아 예수께서 명령하신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태권도가 복음전도의 탁월한 도구임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헌신과 태권도를 통한 하나님 경험을 총체적선교 개념을 통해 태권도선교신학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태권도 수련과정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명료하고 포괄적으로 기술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선교신학이 없는 태권도선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 혼란입니다. ‘태권도 선교사 설문조사(2022)’에 따르면 태권도선교에 오래 헌신해 온 선교사들 중에 태권도 선교사로서 정체성에 대하여 갈등을 경험하는 선교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선교사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선교지에 와서 살고 있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대하여 성경적인 인식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통해 태권도 선교사는 자신의 사역을 성경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태권도 선교사로 선택하셨음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자리를 소명의 자리로 여기고 그곳에서 태권도 선교사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 ‘태권도 선교사의 정체성’에 관련하여 칼럼을 쓰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태권도 선교사들 중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태권도 선교사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태권도선교를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태권도 선교사는 정체성이 분명한 ‘선교사 집단’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16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선교신학의 유익 (7)
    지금까지 대부분 선교사들이 복음전도에 집중하여 사회참여를 등한히 여기는 현상들로 인해 총체적선교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지만 모든 선교는 본질적으로 복음선포와 사회참여적 삶이 통합된 총체적선교입니다. 따라서 태권도선교는 당연히 총체적선교가 되어야 하고, 태권도선교신학이 바로 그 틀이 될 수 있습니다. 태권도선교신학을 근간으로 한 총체적태권도선교를 선교사가 수행할 때 수련자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태권도선교는 선교지 상황과 선교사들의 목적과 계획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태권도선교에 대한 평가 역시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일괄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태권도가 사용되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 평가되어야 합니다. 현재 선교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태권도 선교사는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태권도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일반 태권도 사범들과 다를 바 없이 선교지에서 태권도장을 경영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런 선교사는 선교적 차원과 의도를 가지고 태권도장을 경영하더라도 실제로 복음을 선포하거나 예배적 행위를 하지 않아 외형적으로는 해외에서 태권도장을 경영하는 일반 사범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둘째, 태권도를 사람들을 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들은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일반 태권도 사범들과 같은 방식으로 태권도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수련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교회 혹은 신앙공동체로 인도하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이들 역시 태권도 수련의 차원과 의도는 선교적일지라도 태권도를 선교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태권도를 전도 대상자를 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런 선교사는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일반 사범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또한 태권도 수련과 별도로 선교 활동을 합니다. 태권도 선교사의 역할이 태권도 지도자와 기독교 선교사로 구분됩니다. 넷째, 총체적태권도선교를 수행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런 선교사는 태권도에 내포된 다양한 가치들을 성경적으로 재해석하여 수련과정을 통해 실천하도록 훈련합니다. 또한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때에 복음을 선포하여 수련자들이 도장 뿐 아니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지도합니다. 이런 선교사는 수련자들에게 태권도 수련과정을 통하여 성경적 가치관과 기독교 세계관을 심어 주어 그들의 삶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변혁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는 말씀과 같이 태권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자와 복음을 전달받는 자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기술체계의 습득 이상의 유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유익은 태권도를 수행하는 선교사와 수련자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총체적으로 변화되는 유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총체적태권도선교의 근간이자 틀은 태권도선교신학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확한 복음과 선교신학적 태권도선교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인 태권도선교는 총체적태권도선교이며, 태권도선교신학 없는 총체적태권도선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09
  • 필리핀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 승급심사 성공적으로 마쳐
    필리핀 리잘 바라스시의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이 최근 승급심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심사에는 20명의 태권도 수련생이 참가하여 기본 동작, 품새, 호신술, 겨루기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며 성숙한 태권도 기량을 뽐냈다. 특히 수련생들은 긴장된 표정 속에서도 열정과 집중력을 발휘하여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증명했다. 하얀 띠에서 빨간 띠까지 승급을 이룬 이들은 각각의 인증서를 받으며 성취감과 기쁨을 나눴다. 오준섭 선교사는 "이번 승급심사는 6개월마다 진행되는데,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하여 그간의 노력을 빛내 주었다"며, "꾸준한 훈련의 성과가 드러나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학생들이 태권도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더 큰 꿈과 비전을 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은 단순히 기술 연마에 그치지 않고, 수련생들이 자신감을 얻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고 있다. 태권도의 인내와 존중 정신을 배우는 과정은 이들이 앞으로 성장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오는 11월에는 마닐라 카인타에서 열리는 태권도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련생들은 대회에서 기량을 발휘하며 자아를 확립할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한,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열방선교교회 태권도팀은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태권도를 통해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승급심사의 성공은 학생들뿐 아니라 교회와 지역사회에 큰 축복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열방선교교회의 사역이 더 큰 열매를 맺길 기도하게 된다. ■ 아래는 심사 참여 명단 Turning Yellow - Rhamiel Plumo - Keeiziah Louisse Mendoza - Princess Albiola - Rj Villanueva - Elmer Junior Taruc - Anjhielenne Villanueva - Marissa J. Pilar - Mikhaela Jimenez Turning High Yellow: - Jade Honrubia - Samantha Dordas Turning Low Blue - Ray Angelo Reyteran - Mushahi Sakai Turning High Blue - Johnpaul Gianan - Seika D. Sakai - Josue frank p. franciso - Lord Dominick M. Estrera - Renzjeric M. Robredillo Turning Low Red - Alexis John Ancheta - Marco Delacruz - Michael Florendo Jr.
    • 태권도선교
    2024-11-02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선교신학의 유익 (6)
    태권도선교를 신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지닌 선교사는 태권도 수련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신학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 양식과 계시에 대해 본질적 차이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학적 해석은 개인의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이해 수준, 시대적 흐름과 상황, 그리고 해석 능력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다양성이 신학의 한계이기도 하나 동시에 오늘의 상황에 대하여 신실한 태도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 신학자의 시대적 사명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기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성경 연구와 폭넓은 독서를 통해 신학적 사고 능력을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갈고 닦은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이해는 선교사 자신의 문화 안에서 습득된 것입니다. 태권도 선교사가 수련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자신의 문화에서 습득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자들이 그들의 문화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태권도 정신체계 역시 한국인의 정서와 전통에 따라서 국기원이 정립한 정신체계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전통 안에서 태권도 정신체계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표현을 찾아서 수련자들에게 전해야 효과적인 정신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는 수련자들이 태초부터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 일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해 수련자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선교사가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고 올바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태권도 선교사가 수련자들에게 배우지 않고는 태권도 기술은 가르칠 수 있어도 태권도를 통해 복음은 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태권도 선교사는 열정을 가지고 달려 나가기 전에, 서둘러 신발을 벗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사역을 신학적으로 바라보며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적 주제들을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서술해 놓은 조직신학 책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틈나는 대로 공부하고 사역에 적용하는 선교사는 자신의 태권도 사역이 신학적이며 총체적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1-02
  • [안성일 태권도신학 칼럼] 태권도선교신학의 유익 (5)
    자신의 사역을 신학적으로 사고하고 성찰하는 습관을 가진 태권도 선교사는 선교의 본질을 상실한 전통이나 관습을 되풀이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신학적 사고는 성경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전통과 관습에 따른 관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역사하시며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까지 태권도선교는 전통적인 한국 태권도의 전통과 관습을 선교지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태권도를 통해 선교를 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으로부터 거리가 먼 유교 전통에 의한 엄격한 상하관계를 태권도의 전통으로 여기고 가르치고 있으며 최홍희의 5대 태권도 정신을 표준 태권도 정신으로 여기고 수련자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태권도 수련 과정에서는 신학교육과 선교훈련을 받은 선교사와 받지 않은 선교사, 심지어 태권도 선교사와 非그리스도인 태권도 사범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만일 태권도 선교사가 자신의 사역을 신학적으로 사고하고 성찰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자신의 사역으로부터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더불어 태권도선교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과 질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역 가운데 흐르는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며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하심과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또한 신학적 사고는 태권도선교를 복음적이며 전략적으로 수행하도록 돕습니다. 태권도선교와 같은 전문인 선교 영역에서는 선교전략이 선교신학적이기 보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복음적인 환경에 접근하는데 용이하도록 방법론적으로 사용할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일반선교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서 방법론적으로 태권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결과가 이루어지는 일인 만큼 방법론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방법론적인 선교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수련 과정을 성경적으로 성찰하고 복음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 과정들을 통해 방법론적이었던 태권도선교가 선교신학적 바탕을 가진 전략적인 선교로 전환될 것입니다. 아울러 신학적 사고의 유익은 과거 태권도선교 경험을 성찰함으로 그 시절에 인식하지 못했던 성령의 역사를 현재 시점에서 해석함으로 소중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태권도 선교사가 태권도 기술 중심의 사역을 했던 당시에도 성령께서는 여전히 그 가운데 역사하셨으며 단지 태권도 선교사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과거에 묻혀 있던 태권도선교의 경험을 성령의 빛 가운데 드러냄으로 성경적이며 선교신학적 재해석을 통해 태권도선교의 자원으로 삼을 때 1세대 태권도 선교사들의 헌신에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며 전략적 태권도선교를 위한 매우 유익한 자원이 될 것입니다.
    • 태권도선교
    • 칼럼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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